최근 출간된 소설가 조정래의 베스트셀러 '정글만리'와 역사서 '한반도 분할의 역사'(저자 이완범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역사적 사실 하나가 공통으로 소개된다. 대다수 우리 국민은 1945년 8월 15일을 히로히토 일본 일왕이 항복 연설을 한 날로 기억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실제, 히로히토의 연설문을 보면 어디에도 항복은커녕 사과한다는 말도 없다. 오히려 "일본의 자존과 동아시아의 안정을 확보하려는 바람에서 전쟁을 선포했을 뿐 다른 나라의 주권을 침해했거나 영토를 확장하려는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고 하더니 "제국과 합심해 동아시아 해방에 노력한 여러 동맹국에 대해 유감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란 말도 했다. 적반하장(賊反荷杖)을 넘어 후안무치(厚顔無恥). 대다수 국민은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이 들 것이다.
미국도 미주리호에서 일본이 연합국과 항복 문서에 조인한 9월 2일을 대일전승기념일로 삼았다. 러시아 중국 몽골 대만 필리핀 등도 마찬가지다. 현지 일본인이 항복한 날이거나 무장해제된 날이다. 이완범 교수는 "일왕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고 일본이 오히려 피해자임을 말하는 종전조서를 방송한 날을 광복절로 정해놓고 망언과 신사참배를 거듭하는 일본이 진정으로 변하기를 바라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고 주장했다.
뜬금없이 일왕의 항복 연설을 끄집어낸 연유는 후쿠시마 원전의 방사능 오염수가 해양에 유출되는 사고 이후 보이고 있는 일본의 태도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는 오염수 유출 사고 이후 지난달 9일부터 후쿠시마 이바라키 군마 미야기 이와테 도치기 지바 아오모리 등 8개 현에서 나오는 수산물 수입을 금지했다. 자국민의 안전과 이익을 최우선으로 해야 하는 정부로서는 당연한 조치다. 하지만 일본의 이후 태도는 'X 뀐 놈이 성내는 꼴'이다. 수산청 고위 관리들을 우리나라로 보내 항의한 것도 모자라 최근 APEC 정상회담에서 아베 총리가 외교적 결례를 무릅쓰고 박근혜 대통령에게 금수(禁輸) 조치를 해제해 달라고 요구했다. 그들이 내거는 금수 조치의 해제 근거는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일본은 또 세계무역기구(WTO) 회의에서 한국을 제소하겠다고 한다.
적반하장도 이 정도면 가히 MVP급이다. 방사능 오염수 유출 사고는 '내 집에 난 불이 옆집에 옮겨붙은 것'과 유사한 상황이다. 그럼, 불이 난 집주인의 대응 태도는 어떠해야 하나. 일단 옆집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사과 또는 보상하는 것이 상식 아닌가.
우리 국민이 더욱 공분하는 것은 일본이 유독 한국에만 자국의 수산물 금수 조치에 대해 화풀이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이나 러시아 대만 등 우리보다 더하면 더했지 작지 않은 규제를 가하고 있는 나라에는 묵묵부답으로 무대응하고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모든 법 위에 존재하는 것이 '국민정서법'이라는 말이 있다. 일본 정부는 '과학적 근거' 같은 분위기 파악 못하는 소리나 하지 말고 한국 등 이웃 국가 국민의 감정을 우선 헤아리고 이들이 안심할 수 있는 대책을 내놓는 데 집중해야 한다.
우리 정부도 방사능 수산물 괴담으로 큰 피해를 보고 있는 국내 수산물 소비 회복에 모든 정책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 우선 할 수 있는 것은 일본 수산물 전면 수입 금지 조치이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최근 "일본이 WTO 제소를 해도 우리가 승산이 있다"며 "일본 수산물에 대한 신뢰가 회복되거나 일본의 방사능 오염 수준이 정상화될 때까지 전면적인 수입금지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또 정밀 검사 결과를 정기적으로 투명하게 공개하고 원산지 표시 단속을 강화해 국민의 불안감을 씻어내야 한다.
"조류독감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잠잠해지지만 방사능 오염수 파문은 종결 시점이 언제가 될지 모르니…." 손님이 절반 이상 떨어졌다는 자갈치시장 한 횟집 상인의 한숨 소리가 쉽게 그칠 것 같지 않아 걱정이다.
해양수산부장
)
